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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거집단 과 움벨트(Umwelt)

성장하면서 내가 속해있는 다양한 준거집단(Reference Group)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어디에 가치를 둘것인지를 배운다. 이러한 준거집단은 학교나 직장, 종교, 취미 모임처럼 사람들로 구성된 커뮤니티 일 수도 있고, 책이나 영화, 음악과 같은 문화 콘텐츠를 통한 상징적, 유동적 준거집단 일수도 있다.

내가 속해있는 준거집단이 다양하고, 나와 교류가 많을수록 영향을 많이 받는다. 성장기를 지나며 나의 기질적인 특징들까지 영향을 주면서, 내가 세상을 인식하고 바라보는 "움벨트(Umwelt)" 가 형성된다.이렇게 형성된 움벨트는 나를 움직이고 지탱하는 세계관으로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된다.

2010 년 부근부터,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 글로벌 SNS 의 유행으로 여러 사상들이 빠르게 퍼졌다. 아무런 제한없이, 국경을 넘어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생각들이 빠르게 퍼졌고, 지리적 제약이나 통제받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준거집단이 되었다.

기성세대는 인접한 지역이나 동류 문화권을 준거집단으로 움벨트를 형성했다면, 세로운 세대는 인터넷을 그 기반으로 삼았다. 빠르게 퍼지는 문화 컨텐츠나 밈을 통해 나의 소속감을 갖고, 나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받으며, 나의 생각을 교류하며, 그 생각을 강화하는 준거집단으로 삼는다.

과거에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동류 문화권의 준거집단을 통해 위로받거나, 교훈을 얻거나, 해결 방법을 찾았을 것이고, 세대를 거쳐 조율되며 "전통" 이라는 모델로 빚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나의 고통에 대한 위로와 교훈과, 대답을 얻을수 있다. 이 새로운 준거집단과, 나의 기질적 특성이 만나 화학적으로 결합하며,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인 움벨트가 완성된다. 그동안 잘 조율된 (그러나 비효율적이거나 불합리한) 전통과 충돌을 일으키며 빠르게 변화할 수도 있고, 정보가 빠르게 유통되며 "전통적인 방식의" 억압과 통제가 쉽게 통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억압이나 통제는 더 은밀한 방식으로 진화하였다. 게다가, 이제는 다양한 동기로, 우리를 스스로 파괴할 수 있는 다양한 "나쁜 것" 들을 우리 스스로 적극적으로 만들어내게 되었다.

미국발 경제 불황의 여파로 세계 곳곳에서 극단주의들이 눈에 띄게 보이기 시작했고, 지역주의나 민족주의가 보이더니, 코로나를 지나며 이제는 서로 담을 쌓는 반세계화가 일반적인 상태가 되었다. 새 시대의 다양한 위기가 생존문제로 연결되자 고립주의가 만연해졌다.

이러한 흐름은 사람들 사이를 떠도는 생각과 의지가 투표라는 형태로 투사되어 지역과 국제 정치체계까지 영향을 주게 된 것이다. 인심이 나던 곳간이 바닥나면서, 단절된 국제 사회는 악화된 민생의 결과이자, 이제는 다 원인이 될 것이었다.

이런 엄혹한 시절의 사람들은 이유를 찾고 싶어 했을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누구 탓일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게 무엇이라도 대답은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거대한 경제 사이클의 골짜기에 들어왔을수도 있고, 인류가 착취와 소비로 쌓은 갚아야 할 빚이 너무 많아진 탓일수도 있다.

과거부터 이어온 사상이나 체계가 현시대와 맞지 않아서 이제 파열음을 내기 시작하는 것일수도 있고, 기후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본능적으로 생존의 위협을 느낀 것일수도 있다. 어쩌면, 인터넷을 통해 본 풍요로운 삶 때문에 내가 더 비참하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것이든 절대로 단순한 답은 없을 것이다. 수많은 이유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을 것이고, 그 결과 자체가 다시 이유가 되어 계속 변화를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시대마다 이러한 불확실과 복잡성을 신에게 의탁하기도 했고, 철학과 과학을 통해 이해하고, 문학으로 남기기도 했다.

역사를 통해 인류의 실수와 오류를 기록해서 후대에 남겼다. 우리를 둘러싼 불확실과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해 몇천년에 걸쳐 일어나는 매우 느린 화학작용이었다. 이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증류하여 남긴 정수였다.

다행히도, 현대 사회에서는 매우 훌륭한 접근성으로 이 유산들이 다양한 매체로 우리 주변에 남겨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뛰어난 접근성 탓에, 다른 자극적이고 달콤한 이야기가 우리의 시간과 정신력을 빼앗아, 깊은 생각을 할 기력을 잃게 만들었다.

인터넷의 밈과 영상들은, 아주 단순하고, 확고하게, 때로는 해학과 풍자로, 내가 겪고있는 고통과 불안의 이유를 설명한다.처음에는 장난으로, 분노로, 어쩌면 나은 미래를 위해 시작했던 활동들이 많은 사람들의 입과 마음에 오르며 준거집단이 되어 소속감과 가치관을 제공했다.

나의 머릿속에 정리되지 못한 떠도는 생각들을, 사상가가 제공한 논리적인 이유와, 멋진 구호로 무장하며, 비판과 의심없이 받아들이다보면, 어느덧 과거 모든것을 신에게 의탁했던 것과 같은 "쓰여진 신" 을 모시는 성도가 된다.

그 "쓰여진 신" 을 따르는 성도들은, 이제 스스로 경전을 만들어낸다. 누군가는 나의 신앙을 지켜내고, 믿음을 입증하기 위해 만들기도 하고, 혹은 나의 입지를 위해 전도사를 자청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해 팔릴만한 것을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생산된 자극적이고 확고한 경전들과 말씀들은 또 다시 인터넷을 떠돌며 다른 신도를 만든다. 나를 제외한, 타자화된 "우매한 민중" 이라고 말하는게 아니다. 먹고살기 바쁘고, 잠깐의 휴식이라도 재밌는걸 하고싶은, 괴로운 삶을 위로받고 싶은, 때로는 분노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얘기다.

삶에 소진된 이들에게 타협이나 인내, 희생과 공감 같은 것은 냉혹한 현실도 모르는, 배부르고 예쁜 헛소리다. 나의 고통을 대변해주고, 우리가 가야할 이상향을 제시하며, 문제의 원인을 명확하게 진단해주는 "쓰여진 신" 이야 말로, 지친 우리가 "생각하지 않고" 의지할만한 것이 되었다.

수요가 있으면 생산이 있다. 원하는 소비자가 많으니, 생산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자체가 하나의 생태계가 되었고, 그것의 결과가 이 상황을 점점 나쁘게 만들어 가고 있다. 여기에 "알고리즘"으로 생산자와 수요자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의 노력까지 더해, 이제 커뮤니티의 자정 노력도 불가능해졌다.

늙은이들은 그렇다 치자. 그래도 그 나이쯤 되면 옳든 그르든, 기존 사회에 적응한 움벨트, 세계관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투쟁의 시대에 자라나는 성장기의 아이들이 받는 영향과 결과는 매우 클 것이다.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서로 단절된 세계와, 양극화된 모두를 비교하는 SNS, 황금만능주의, 나의 고통의 이유를 혐오와 분열로 설명하는 "쓰여진 신" 의 신도들. 이 소란의 시대를 자라온 세대의 진정한 고향은 어디이고, 그래서 만들어진 그들의 가치관은 어떤 모습인가.

무질서는 더 빠르게 심해질 뿐, 저절로 나아지지 않는다. 결국 사람들에 의해 교정되어야 하며, 그러려면 동기와 에너지가 필요하다. 모든 이들이 나눌 만큼 자원이 풍족해져서 여유가 생겨 주변을 돌아볼 동기가 생길수도 있지만, 3차 대전 끝에 인류 존망의 위기에서 동기를 찾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도 조별과제는 항상 망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교훈을 얻고, 역사로 남긴후, 깨끗하게 다시 잊겠지. 이것이 역사속에 보이는 파멸과 회복의 거대한 경제 사이클의 이유가 아닐까.

다만, 그 파멸의 시간을 어떻게든 늦추고 있는 영웅은, 시끄럽고 무례하다가도 불의에 싸우고, 맹목적인 믿음에 서로 미워하기도 하지만 타인에게 연민하는,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삶에 고갈되고 지친 우리의 이웃들이다.

우리의 형상은 신을 본떴다고 한다. 우리의 본성의 어딘가에도 신의 한 조각이 있다.